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티브 칼튼 (문단 편집)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 || [[파일:external/www.halloffamememorabilia.com/p-30562-steve-carlton-st-louis-cardinals-8x10-photo-pose-hf-9044.jpg|width=100%]] || 1944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칼튼은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배워 자유계약신분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하기에 이른다. 루키 시절에도 뛰어난 스터프를 바탕으로 주목받는 선수였고, 1960년대 [[밥 깁슨]]이 리그를 호령하던 카디널스의 전성 시절에 한 몫 하면서 1967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카디널스 뛴 7시즌 동안 77승을 거두었지만, 이 당시의 칼튼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준수한 젊은 선발요원 정도. 물론 평균자책을 보면 2점대 중반부터 3점대 중후반까지 지금 보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1960년대 메이저리그는 사상 최고의 투고타저의 시대였기 때문에 3점대 중후반의 평균자책은 대단히 평범한 수치였다. 그래도 1969년에는 17승에 2.11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세인트루이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20승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팀에서는 그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고, 실제로 1969년을 제외하면 조정평균자책이 에이스라 할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카디널스에는 전설적인 에이스 [[밥 깁슨]]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칼튼을 고액 연봉까지 줘가며 지킬 필요는 없었다. 당시에는 밥 깁슨이 무릎부상 때문에 커리어를 길게 가져가지 못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스티브 칼튼의 성적과 성장은 1969년부터 배운 [[슬라이더]]의 영향력이 아주 컸는데, 당시 개념으로 슬라이더는 [[스크류볼]]에 못지않게 선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공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 때문에 1969년 스티브 칼튼이 처음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첫 6경기에서 4패를 당해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투수코치가 인정한 뒤였다. 더욱 큰 문제는 실제로 스티브 칼튼은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국 1970년에는 20승을 하기는 했지만 평균자책점은 전년도의 2.11에서 3.71로 수직상승했고, 시즌 막바지에는 슬라이더는 전혀 던지지 않았다. 결국 그의 재능이 더 발전할 수 없을 거라 판단했는지, 연봉을 더 올려달라는 칼튼의 요구에, 세인트루이스는 1971시즌이 마친 후, 그를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투수 릭 와이즈(Rick Wise)와 트레이드했고, 이는 카디널스 역사상 최악의 실수로 남게 되었다. 사실 릭 와이즈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뛴 2년간 매년 16승에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올스타에도 한번 선정이 되었으며,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의 올스타 외야수 [[레지 스미스]]와 트레이드 되는 등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트레이드 상대인 스티브 칼튼이 너무 잘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